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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칼럼
꽃도 명품으로 바꾼 에코플라워 성공사례
꽃도 명품으로 바꾼 에코플라워 성공사례
관리자, 2012/02/21, HIT : 658, 추천 : 0
인터넷 쇼핑몰 ‘에코플라워’ 신귀자 사장 명품 꽃다발’로 온라인시장 석권…미국으로 꽃꽂이 유학도 다녀와 불혹을 넘긴 신귀자(43) 에코플라워 사장의 첫인상은 영락없이 소녀다.

그렇게 수줍은 미소의 동안(童顔)으로 어떻게 연간 50억원 매출의 온라인 꽃배달 사업을 일궈냈을까 궁금증부터 발동했다. .

사실 신사장은 참 겁이 없다.

첫 자기사업을 시작한 게 24살 때였다. 홍대 미대를 다녔던 신사장은 친구와 동업으로 입시학원을 차렸다.

2년 뒤 학원을 접고 전업한 게 바로 꽃집. 정물화 연습용으로 늘 꽃이 필요했던 학원 운영 시절, 꽃을 사오는 것은 신사장의 몫이었다.

신사장은 꽃집으로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꽃이 너무 좋아 꽃꽂이 학원에 등록한 것이 꽃집을 차리게 된 인연이었다.

고객들 앞에서 ‘노’는 없다 . 신사장의 첫 꽃집은 1983년 잠실에 차린 20평짜리 가건물. 보증금 50만원을 밑천으로 ‘아름꽃방’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가게를 채울 꽃을 사는 비용 100만원은 여기저기서 ‘투자’를 받았다. 첫 출발은 그렇게 소박했다.

신사장의 비범함은 ‘열정’에 있었다.

꽃을 너무 좋아했던 그는 남들이 1년 걸려 배울 걸 한 달이면 배웠다. 여기에 고객 입맛을 잡아내는 타고난 감각이 더해져 신사장만의 경쟁력이 발휘됐다.

당시 꽃은 대개 흰종이나 신문에 둘둘 말아주는 정도였다.

신사장은 포장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에 주목했다.

문양이 들어가고 컬러가 배합된 셀로판지를 구해 흰종이 대신 꽃 포장지로 썼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이면 하루 매상이 2,000만원씩 됐다.

한달 평균 6,000만원의 매상을 올렸다. .



“꽃이 얼마나 좋았던지…. 떠오르는 아이디어대로 꽃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새벽 3시에 가게에 남아 연습한 날도 많았어요. 열정을 주체 못하던 시기였죠.”



그렇게 하기를 3년. 20평짜리 임대 가건물에서 출발한 그는 단 3년 만에 2억500만원으로 23평짜리 가게를 샀다.

신사장은 새 가게로 옮긴 직후 간판부터 바꿨다.

‘플로토피아’ 86년 당시에는 영어를 합성한 단어조합이 대유행이었다.

철저히 시장의 흐름을 파악해 반발 앞서는 신사장의 감각이 간판에도 드러난 것이다.

당시 꽃집들은 대개 매장에는 거의 신경을 안 써 어두침침했다.

신사장은 매장에 인테리어 개념을 도입하고 고급스럽게 꾸몄다.

가게를 환하게 만들고 리본 등 부자재는 최고급으로 썼다.

영업시간도 조정했다.

일반 꽃집은 저녁 7∼8시면 문을 닫았다.

신사장은 11∼12까지 꽃을 팔았다.

퇴근 후 꽃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서였다.

고객들 앞에서 ‘노’라는 단어는 없었다.

이때쯤에는 이미 분당에서도 꽃을 사러 오는 단골고객들이 있을 정도로 입소문이 퍼진 상태였다.

88년 상반기 처음 시작된 통신판매는 이런 신사장의 명성에 불을 붙였다.

국내 굴지의 신용카드사에서 고객 서비스로 꽃·케이크·샴페인을 묶어 상품을 개발하는데 단독 납품하라는 제안이 들어온 것.

신사장은 전화 상담 여직원, 꽃 디자이너 2명, 배송직원 3명을 채용하고 통신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일반 꽃집에서는 많아야 이틀에 하나 정도 꽃바구니를 팔던 시절이었다. 신사장은 하루에 70∼80개를 만들었다.

밤 12시 전에 퇴근하는 날이 없었다.

하루종일 꽃바구니를 만들고 새벽이면 일어나 꽃과 부자재를 샀다.

하루 2∼3시간 자는 날이 6개월여 계속됐다.

우선 몸이 도저히 당해내질 못했다.

전국으로 배달하다 보니 클레임이 늘어난 것도 문제였다.

배송직원이 5명으로 늘어나고 봉고차 6대가 매일 배달을 다니다 보니 수많은 접촉사고가 일어났고 교통위반을 처리하는 일만도 골치가 아팠다.

온라인 쇼핑몰, 지난해 매출 40억원

여러모로 한계에 다다를 즈음, 신사장에게 큰 전환기가 찾아온다.

꽃꽂이 스승 서영숙씨가 유학을 권유한 것. 신사장은 통신판매사업을 정리하고, 플로토피아 꽃집 운영은 직원들과 남편에게 맡긴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92년, 32세의 나이였다.

유학에서 돌아온 신사장은 미국에서 배운 꽃꽂이를 철저히 한국에 맞게 풀어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시해 포장을 최대한 절제하지만 한국 정서에는 그게 안 통했다.

신사장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포장을 결합했다.

2002년, 신사장에게는 가장 큰 전환기가 찾아온다. 야후·네이버 등 온라인 업체에서 온라인 꽃 배달 입점 제의를 해 온 것.

신사장은 입점하는 대신 자신의 꽃을 ‘명품’ 카테고리에 넣어 달라고 요구했다.

꽃에 명품이라는 컨셉트를 적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로선 처음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입점 직후 맞은 발렌타인데이·화이트데이에는 하루 300∼500개의 꽃 주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최대 소화량은 하루 100개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주문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고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신사장은 냉정히 반성했다. 영업·마케팅 등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치밀한 계획도 없이 사업을 시작한 결과였다.

2002년, 신사장은 플로토피아를 매각하고 20여년간 계속했던 오프라인 꽃집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고 회사로서의 시스템을 갖춘 에코플라워 법인을 설립했다.

본격적인 온라인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디자이너 양성을 위해 에코플로리스트스쿨도 설립했다.

에코플라워는 첫해 매출 10억원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에는 300% 신장한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5대 온라인 쇼핑몰 꽃배달 시장에서 에코플라워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약 50%.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다.



◈신사장의 ‘꽃 장사 성공 노하우’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 끊임없이 개발”.



1.끊임없이 공부에 투자한다.

신사장은 한창 꽃집이 잘 되던 1992년에 과감히 매장을 직원들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디자인을 배우러 떠났다.

그 이후 97년까지 평균 1년에 2∼3번씩 핀란드·독일 등 유럽으로 보름·한달짜리 단기 코스 디자인스쿨을 다녔다.



2.시장 입맛에 맞는 꽃을 디자인한다.

신사장의 철저한 시장 중심 디자인 감각은 꽃 디자인과 상품 선정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신사장은 우선 시장에 나와 있는 포장지와 부자재를 본다.

그리고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연구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디자인보다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깔·질감 먼저다.

거기에 맞춰 드로잉을 해보고, 단가를 두드린 후 꽃을 완성한다.

그리고 나면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쇼윈도에 진열한다.

반응이 좋은 꽃은 눈 깜짝할 새 팔린다. 그러면 그 상품을 주력으로 내놓는다.



3.신상품을 다양하게, 그러나 실패 확률은 최소한으로.

온라인 판매용 상품개발을 할 때 신사장은 시장 입맛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판매되는 빈도수를 보고 잘 팔리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변형 상품들을 신상품으로 내놓는다. 개성이 다양하지만 꽃의 취향은 대략 두 가지로 대별된다.

화려함과 고상함이다.

이렇게 한달에 최소 15∼20개의 신상품을 공급함으로써 실패율을 최소화한다.



4.일 벌이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신사장은 기회가 왔다 싶으면 망설임 없이 잡는다.

처음 꽃집을 벌일 때도 그랬고, 통신판매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일단 벌여놓고 나서 최선을 다하면 그게 기회로 이어졌다.




[출처] 인터넷마케팅컨설팅그룹 클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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